겉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게 다인가?' '나는 왜 사는 걸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 공허함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러시아의 문학 거장 레프 톨스토이는 이미 150년 전에 똑같은 질문으로 괴로워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번 예고 드린 바와 같이 도스토옙스키와 동시대를 살았던 또 한 명의 러시아 문학 거장 톨스토이의 생애와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통찰과 사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귀족에서 구도자로, 톨스토이의 삶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5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심각한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됩니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고뇌의 과정은 그의 작품 《참회록》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절망했지만, 결국 농민들의 소박한 삶 속에서 답을 찾아냅니다. 이후 톨스토이는 사치스러운 귀족 생활을 버리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직접 밭을 갈고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살았습니다. 노년기 그의 사상은 비폭력, 무소유, 그리고 단순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1. 진정한 행복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삶을 보여주는데, 정열적인 사랑을 쫓다가 파멸하는 안나의 삶과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레빈의 삶을 제시합니다. 레빈은 작품 속에서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죠. 레빈은 도시의 화려한 사교계가 주는 공허함을 느낀 후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농민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합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낭만적 이상주의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레빈은 육체노동을 통해 진정한 만족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톨스토이가 레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명확합니다. 행복은 외부의 자극이나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의미 있는 노동과 소박한 일상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차, 더 멋진 일상 등 현시대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 주는 만족감은 순간적입니다. 처음에는 더없이 기쁘고 만족스럽다가도 그 감정은 얼마 가지 않고 금방 시들해집니다. 톨스토이는 묻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입니까, 아니면 내면의 평화입니까?"
2. 우리는 얼마나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는 피에르 베주호프입니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영에 염증을 느낍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의 포로가 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물질적 소유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진실되게 사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귀족사회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경건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농노들을 착취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모순을 폭로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삶이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비폭력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도권 종교와도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일회용품을 무분별하게 쓰고, 공정성을 말하면서 불공정한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SNS에는 포장된 모습만 올립니다. 톨스토이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말과 행동은 일치합니까?"
3.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비폭력주의는 톨스토이의 후기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입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국가가 행하는 전쟁이나 법적 처벌조차도 폭력이며, 이는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생각했죠. 이러한 사상은 후에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제목 자체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톨스토이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전쟁 속 영웅의 화려한 서서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무의미함과 잔인함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작품 속 전쟁은 권력자들의 허영심이 만들어낸 재앙으로 묘사되며, 진정한 영웅은 화려한 전투 속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사람들이 아닌 일상적인 선함을 실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현대사회는 여전히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전쟁, 테러, 범죄는 물론이고, 말과 글을 통한 정신적 폭력도 만연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응징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악에 대항하는 방법은 더 큰 악이 아니라 선행과 용서라고. 이것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역사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을 수없이 증명해 왔습니다.

맺으며
톨스토이는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가족들 곁을 떠났습니다. 거대한 저택과 재산, 명예를 모두 뒤로한 채 한 시골 기차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비극적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관철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문학작품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던진 질문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톨스토이 역시 완벽한 성인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에도 모순과 실패가 있었고, 때로는 그의 극단적인 이상주의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질문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통찰들을 아낌없이 나누었죠. 이제는 우리가 그의 질문에 답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 있을 것이며, 또 그 답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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